- 글번호
- 100825
- 작성일
- 2020.08.05
- 수정일
- 2020.08.05
- 작성자
- 대외협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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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12
(동문인터뷰) 치의학과 송호용 동문
[ 우리는 GWNU 동문 ]
선배님 보고 싶습니다 / 동문 릴레이 인터뷰 40호
치의학과 송호용 동문/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
Q1. 안녕하세요, 송호용 동문님! GWNU 자랑스러운 동문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문님에 대한 간략한 소개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1992년도 당시 ‘강릉대학교’였을 때 치의예과에 입학했습니다. 당시에는 전기·후기 학력고사로 학생을 선발하던 시절이었는데, 저는 운이 좋게도 입학식에서 신입생 대표로 선서를 맡게 됐어요. 그 일로 인해 초대 과대표 겸 학회장도 맡게 돼 당시 아무것도 몰랐지만 어떻게든 해내기 위해 좌충우돌 정신없이 한 해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 ‘치과보철과’를 선택해 4년간 수련의(전공의)생활을 하며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지냈고, 수련기간이 끝난 후 3년간 공중 보건의사로 강원도 홍천에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2005년 춘천에 3기 동문인 김동석 원장과 함께 춘천예치과를 공동 개업하게 됐고요. 저희 치과는 초기 의사 4명, 직원 12명으로 시작했었는데, 지금은 어느덧 의사 10명, 직원 120명이 함께하는 강원도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제31대 대한치과의사협회장 선거에 당선돼, 지난 5월부터 대한치과의사협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동문님께서 우리 대학 치과대 치의학과 ‘제1기’ 졸업생이신 점이 특별합니다. 제1기 졸업생이시면 선배라든지 학과만의 고유한 문화가 전혀 없었을 텐데, ‘제1기’로서 어떤 대학생활을 보내셨나요?
저희 치의예과는 당시 신설 학과여서 교수님도, 학과사무실도 없어 처음엔 화학과에 소속되어 학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후로 치의학과 건물이 생기면서 본과(치의학과)생활을 4년간 하게 됐지만, 병원실습과정이 집중되어있는 본과 3학년 시절엔 본교병원이 없어서 학우들과 서울대학교 치과병원에서 1년간 파견을 가서 생활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기회이기도 했지만 1기로서 서러운 시간이기도 했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아쉬운 점은 선배가 없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대학생활에서 의지하고 조언해줄 선배들이 없었다는 건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하게 되는 일이라, 저희 1기 대학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행착오의 연속’ 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자립하고 적응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얻었고, 끈끈한 동기애가 생기기도 했네요.
Q3. 동문님께서는 우리 대학 치과대에서도 특히 ‘보철과’에서 수련하셨는데요. 여러 전공 중 치의학과를 선택하게 되신 계기와 그 중에서도 ‘보철과’를 전공하신 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중학생 시절 친하게 지냈던 형이 단국대 치과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요, 형이 방학 때 과제물로 붕어 골격을 완성하는 실험을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부럽고, 존경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때부터 치과의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됐고, 다행히 치과대학 생활이 적성에 잘 맞아 큰 어려움 없이 대학생활을 했던 것 같네요. 치과대학병원 전공과목은 10개 정도가 되는데, 그 가운데 보철과는 치과치료의 핵심인 치아기능회복을 위한 치료계획과 보철물제작, 그리고 완성까지 전 분야를 담당하는 과목이어서 고민 없이 선택했습니다. 보철과에서 많은 것을 배우며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에, 보철과를 전공한 것을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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